자세한 정보는 공식 홈페이지를 참고하자. https://www.louvreabudhabi.ae/
알아도 삶에 도움 1도 안되는 얕고 잡스러운 지식, 그리고 쓸데 없는 이야기.
대충 여기 쯤 있는 가게이다.
대략 3개월 하노이에 머물면서 먹었던 쌀국수 중에 가장 맛있었다. 대우호텔 북쪽 골목 어딘가였던 기억이 나는데 정확한 것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시 하노이에 간다면 꼭 다시 찾아가고 싶은 곳이다.
베트남 음식 중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다. 야채는 무한 리필, 쌀국수(분)도 어마어마하게 많이 준다. 물론, 야채는 손님 상에 여러 번 오르락 내리락 하므로 깨끗하지 않다. 거기에 쌀국수도 재탕한다. 위와 장이 튼튼하지 않거나 물갈이가 심한 사람은 분명 설사로 고생할거다.
백종원의 스트리트 머시기 하는 프로그램에도 나왔던 음식이다.
닭이 작은 건지, 아니면 살을 떼어 낸건지, 아니면 이래저래 찢어 놔서 그런 건지는 알 수 없지만 고기가 풍성하게 붙어있는 느낌은 아니다. 거기다 가격도 싸진 않다. 저렇게 두 명이 먹고 2만원 쯤 썼는데, 한국인이나 한국인 수준의 소득이 있는 사람이 크게 부담되지 않겠지만 분명 현지인이 먹기에 쉬운 가격은 아이다.
하지만 구운 반미를 함께 먹으니 양이 부족한 느낌이 들지는 않고, 맛이 참 좋다. 꼭 한번은 들러야 할 곳이다.
대우호텔에서 동쪽으로 조금 가다보면 큰 몰이 하나 있는데 그 근처에 있는 식당이다.
김치도 있고 대충 저런 것들을 구워먹는다.
가격은 1인당 3만원 정도 했던 듯 하다. 돼지고기도 있고 소고기도 있고, 염통 이라던가 이런저런 특수 부위와 해산물도 있고 뭔가 종류는 참 많은데, 그런데…….. 별로다. 두 번은 가지 않았다. 김치도 더럽게 맛 없었다. 추천하지 않는다.
역시 글쓰기는 미루면 안된다. 기억이 나질 않는다…..
넷째 날은 국립국부기념관1(25.04078879331904, 121.56202618676458)과 101타워2(25.03554776247256, 121.564297909543)를 방문했다.
첫 포스트에서 이야기 했던 것처럼 무작정 비행기 표 한장과 카메라 하나 들고 비행기를 탔었기에 아무런 정보가 없던 터. 첫 날 숙소에서 마주쳤던 외국인이 이야기 했던 101타워가 생각나 지도를 바라보면 무조건 걷기 시작했다.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할까, 101타워 북서쪽에는 국립국부기념관이 있었기에 101타워를 향하던 중 기념관을 들를 수 있었고 근위병 교대식을 기다렸다 교대식을 한번 더 볼 수 있었다.
장제스 기념관의 근위병 교대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101타워, One-o-one 타워라고 많이 불리우는 듯 하다. 국부 기념관 동쪽으로는 타이페이 시청이 있다.
멀리(?) 보이는 101타워. 정확한 이름은 타이페이101 (타이페이 금융센터)이다. 두바이에 부르즈칼리파카 세워지기 전까지는 말리이시아의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를 뒤이어 약 7년간 세계 최 고층 마천루로 그 위용을 뽐냈었다.(고 한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높고 유명한 건물이라 하여 들렀지 그리 큰 관심사는 아니었다. 하지만 공돌이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중요한 것 하나
전망대 89층을 둘러보고 88층으로 내려가면 볼 수 있는 92층에 메달려있는 저 크고 아름다운 쇳덩어리. 건물의 높이가 워낙 높다보니 외부 영향(바람 등)으로 부터의 건물의 흔들림을 방지하기 위한 구조물이다. 두께 12.5cm 원반 41장을 붙여 만들었다고 하는데 무게가 무려 660t. 건물의 흔들림을 방지 한다고 무작정 흔들리게 둘 수 없으니 댐퍼와 여러 구조물들이 이를 적당히 고정하는 구조로 되어있다. 101층 높이에 660t 짜리 쇠공이라니… 대단하다.
외부 전망대로 올라가면 사진과 같이 타이페이 전경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계획도, 예산도 없이 시작한 여행이라지만 빈손으로 돌아갈 수야 있나 무언가 기념이 될 것을 찾기 위해 현지인 친구에 물었다. 차(茶)를 사가라 한다.
뜨거운 해 아래 이제 다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돌아오는 과정이야 뭐 출발의 역 순.
여행기랍시고 글을 써보고 싶었는데 쉽지 않다. 여러 번 이야기 했듯, 계획도 없었고, 사전 조사도 없었고, 돈도 넉넉하지 않았다. 입국 시 머물 곳에 대한 정보를 제출해야 한다는 얘기를 출발 당일 알고 부랴부랴 하룻밤 숙박 예약을 했으니 무슨 말을 더 하랴.
남들 다 다녀왔다는 고양이 마을은 물론이거니와 고궁 박물관도 들르지 못했다. 흔히들 말하는 남들 다 보고, 들을 것 듣고, 먹을 것 먹는 여행으로써는 0점인 셈이다.
거기다 6년 전에 다녀왔던 여행의 여행기를 쓰고 앉아있으니…
하지만 6년이 지난 지금도, 그리고 10년이 더 지나도 한 가지는 절대 잊지 못할 것 같다.
첫 날 처음 출국장을 통과할 때의 그 기분, 그리고 처음 타오위안 공항에 발을 디뎠을 때의 그 기분, 처음 타본 낯선 나라의 지하철 풍경들.
마치 놀이공원에 엄마를 잃고 혼자 남겨진 8살 아이가 됐던 듯 한 그 기분 말이다.
형용할 수 없는 그 설레는 기분.
특별한 여행지였기 때문이 아닌 처음이었기에 느낄 수 있었던 그 기분.
여행기로써는 부족하고, 별다른 정보가 없는 쓸 데 없는 긴 글이었지만, 만약 이 글을 당신이 여기까지 읽었다면 꼭 이렇게 이야기 하고 싶다.
어디든 좋으니 계획 따위는 머리 속에서 지우고 떠나보라고.
놀이공원에서 엄마의 손을 놓친 아이의 마음과 같은 홀로 됨을 다시 한번 느껴보라고.
인생 첫 ‘나홀로’ ‘해외 여행’ 목적지 타이페이. 시작은 책 한권 분량의 경험을 가지고 돌아오겠노라 원대했으나 막상 그 원대한 꿈은 너무나도 어려운 것이었다. 나와 다른 말을 쓰는 사람들이 가득찬 이 도시는 오로지 두려움과 신선함 이 둘 말고는 내게 주는 것이 없었다. 그나마 두려움보다 신선함이 더 컸던 것은 큰 행운이었다.
그렇게 첫날을 보내고 부랴부랴 숙소를 찾고 예약을 마쳤다. 둘째 날의 목표는 새 숙소까지 무사히 도착하는 것. 다시 첫날이다. 주섬주섬 짐을 챙기고, 캐리어와 가방을 짊어지고 구글 지도를 따라 길을 걸었다. 큰 사고 없이 도착한 Bouti city capsule Inn. 이른 아침 움직인터라 아직은 체크인 전이었기에 짐을 맡겨두고 다시 거리로 나왔다.
그리고 기억은 잘 안나는 어느 식당에서 먹은 아침. 뭔가 밀가루 반죽을 튀긴 건데 맛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또다시 시작된 무작정 걷기. 그렇게 거다 당도한 Wenchang Tepmle. 절이다. 그리고 절 앞은 시장이다. 한국과 다르게 도시 한가운데, 그리고 시장 안에 절이 있다. 또. 절 주위가 시장인건지, 시장 한가운데에 절인건지 아직은 모르겟다. 아무튼 한국인인 내게는 신기한 풍경이었다.
야시장이 아닌 시장에서 무대포 여행초보인 내가 할 일은 없었다. 나름의 고집이 있어 가능하면 가게에 무작정 카메라를 들이미는건 자제하는편이니까. (덕분에 사진을 찍기 위해 쓸모 없는 지출도 하게 되고, ‘더’ 많이 먹게 된다.) 뭔가 관광지 스러운 곳을 찾아보자.
그렇게 도착한 곳은 대만 국립박물관의 Land Bank Exhibition Hall.
(아마 과거 은행으로 쓰였던 건물이었다고 하더라)
국립 대만 박물관에 속한 은행 정시관이 있으니 근처에 국립 대만 박물관도 분명히 있을 터, 그렇다 길을 하나 건너면 얼얼바 평화 기념공원 (228 peace monument), 그 가운데 국립 대만 박물관이 있다.
그렇게 공원과 박물관을 둘러보고 나니 시간 잘지키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내 배는 점심 시간을 알렸고 대만에서의 첫 ‘밥’을 먹었다.
이런 종류의 음식을 파는 식당이 많기에 한군데 들어가서 맛있게 밥을 먹고 나와 현지인에게 물어봤더니 이건 홍콩 음식이지 대만풍 음식은 아니란다. (대만에서의 첫 식사가 홍콩풍 음식이라니..)
다시 발을 떼어 마주친 한 건물. 정확한 이름과 용도는 기억이 안나고, 정부? 지자체?의 한 건물이었다. 월요일인가는 관광도 가능 했던 곳. 아쉽지만 입장 가능일은 아니었던터라 들어가보지는 못했다.
하루 종일 걷는 것은 힘들더라.. 숙소로 돌아와 대충 씻고 젖은 수건 따위를 정리하는데 한 방을 쓰게 된 누군가가 들어왔다. 라커를 못 열기에 도움을 주기 위해 대화를 하다보니 이게 무슨일인가! 한국인이었다. 이역만리 타국 땅에서 내 나라 사람을 만나다니! 이렇게 반가울 수가. 서로 이름은 무어네, 나이는 몇이네 어디서 일하네 반가움을 마구 내뱉는 사이 또 한명이 들어왔다. 이번엔 타이중에서 온 대만인이었다. 나이는 대충 (당시에) 29정도 였던 듯.
사내놈들이 모이면 늘 그렇다. 서로 내가 잘났네 자랑도 좀 하고, 여자 이야기도 좀 하다가 결국 술 이야기. 타이중에서 온 친구가 자신의 고향에 한국의 막걸리와 비슷한 탁주가 유명하다 했다. 맛있는 술이 있다는데 짧은 영어가 대수랴 고향을 떠나온 사내 셋은 밤 열한시에 길을 나섰다.
(이것도 역시나 무식하기에 가능 했던 일이다. 다행스럽게도 대만은 안전한 나라이긴 하지만 타국 땅에서 처음 만난 사람과 그것도 밤 열한시에 술을 찾아 길을 나서다니)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린 그 술을 찾을 수 없었고 한시간을 헤맨 끝에 눈에 들어온 펍에 들어갔고 맥주만 마시고 돌아와야 했었다.
2016년 가을. 이직을 준비하며 처음으로 ‘홀로’ 한국이 아닌 나라로 향했다.
원체 게으르기도 하고, 준비하고 계획 하는 것은 몸에 안맞는 터라 당연히 계획 따위는 없었다.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내년엔 꼭 해외여행을 가리라 마음 먹고 여권을 만들 었던 것이… 아마도 이마저도 없었다면 지금 이곳이 얼마나 사랑스럽고 아름 다운 곳인지 꿈에도 깨닿지 못했을 터.
사직서를 제출하기 전 두어달 전부터 ‘어딘가 가야지 ‘ 고민만하다 하루하루 시간은 흐르고 결국 퇴직일 보름 전에 이르러서야 부랴부랴 갈 곳을 찾기 시작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 했던가 ‘비행기 탈 때는 신발 벗어야 해요?’ 수준의 무식함으로 비행기 표를 끊었다. 정말이지 용감했다. 내 손으로 여권을 내밀어 본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당연히 해외여행 시 주의 해야 할 것이라던가 전혀 아는 것이 없었으니…. 심지어, 캐리어 조차 없었다…. 다행히 동생이 가지고 있었으니 망정이지..
아, 심지어 숙소 예약조차 출국 전날 밤 11시에 했다.
아무튼, 그렇게 용감하게 집을 나서 공항으로 향했다.
인천공항이야 내 나라의 공항이니 내 나라의 언어요 문자인지라 ‘다행히도’ 출국 수속을 마치고,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그리고 또 다행히도, 비행기가 처음은 아니었다.)
문제 없이 하늘로 올라갔던 비행기는 상처 없이 날 타이페이의 타오위안 공항에 내려줬고, 막강한 힘을 지닌 대한민국 여권은 날 ‘Hello’ 와 ‘Thank you’ 이 문장만으로 타이페이에 입국 시켜줬다.
얼마나 다행인가.. 구글 번역기가 없었더라면 가방조차 못 찾았을 터인데.. 어찌어찌 캐리어를 찾고, 구글 지도를 열고 무작정 지도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이 숙소까지의 걸음이 내 여행 스타일이 될 줄이야…)
10월 중순인데도 더웠던 날씨는 날 땀범벅으로 만들었고, 시내 한복판에서 엄마를 잃어버린 아이와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줬다. 모든 것이 생소했고 신기했다. 아는 이도, 대화를 할 수 있는 이도 없는 이 도시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하나, ‘걸어서 내가 예약 한 게스트 하우스에 도착하는 것’. 용감함에 대한 보상이었을까 아니면 운이 좋았던 것일까, 대만은 내 나라 대한민국만큼 안전한 나라였고 타국 땅에서 말한마디 할 줄 모르는 30대의 어른아이를 괴롭히지는 않았다.
30여분을 걸었을까.. 난 생에 첫 여행의 첫번째 목표인 ‘숙소 찾기’ 퀘스트를 완료할 수 있었다. 삐쭉삐쭉 게스트하우스 안으로 들어갔고, 되지도 않는 영어로 체크인을 시도하고, 열쇠를 받았다. (오예!)
일단 캐리어와 가방을 대강 정리해서 사물함에 넣고 또한번 무작정 거리로 나가는 순간, 두 명의 외국인이 내 뒤를 따라 게스트하우스에서 나오며 내게 말을 걸어왔다.
외국인 : “안녕, 너도 여행을 왔구나, 어디서 왔니?”
나 : (두려움에 떨며)”안녕, 난 한국에서 왔어. 너희는 어디에서 왔니?”
외국인 : “우린 OO(기억 안남)에서 왔어, 우리 지금부터 101 타워에 갈건데 너도 같이 갈래?”
나 : (처음 본 날 데리고 어딜 가겠다고???) 우물쭈물…
외국인 : ” 우린 택시를 불렀어 택시를 타고 갈꺼야! 같이 가자”
나 : (다시 또 두려움에 떨며..) ” 아니야, 난 오늘 101타워에 가지 않을꺼야, 아마도 모레쯤?”
외국인 : (쿨하게) ” 그래 그럼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즐거운 여행이 되길 빌께 안녕!”
나 : (안도의 한숨을 쉬며) “그래 너희도! 안녕”
(대충.. 이런 식의 대화였던 것 같다)
사실 그들과 함께 가지 않았던 것이 좋은 선택이었는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거나 약간의 아쉬움과, 약간의 안도감을 안고 구글 지도에 의지한 채 큰 도로로 향했다.
처음 만난 타이페이 거리의 모습은 ‘어릴적 TV에서 봤던 서울 + 일본’ 의 느낌이었다. 거리는 오토바이가 즐비 했고, 중국을 예상했던 것과는 다르게 매우 깨끗했고, 질서있는 모습이었다.
대만은 야시장이라 했던가, 우선은 가장 가까운 시장을 찾았다. 다행히도 멀지 않은 곳에 야시장이 있었고 그렇게 대한민국 촌놈은 걸어걸어 한 야시장에 도착했다.
Shuangcheng Street Night Market. (당시엔 이름도 모르고 무작정 걸었다)
아직은 해지기 전인지라 이제서야 장사를 준비하는 시점인지라 보는 것 말고는 할 것이 아무 것도 없었고, 더위에 지친 목을 축을 음료를 하나 사고 또다시 걷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1지금 그 때의 기억을 떠올려보니 굳이 그럴 필요 없었다. 저 사진을 찍은 시각이 17시 경이니까 대충 음료 한잔 먹고 쉬었어도 아무런 문제 없었는데…..
그렇게 일단 발걸음을 떼면서 다시 휴대폰을 들여다 봤다. ‘드디어! 이제서야!’ 타이페이 여행을 검색 했다. 여행을 오기 전에, 여행지에 도착해서 사람들이 어딜 가는지 찾아봤단거다.
그렇게 도착한 곳이 바로 Shilin Market.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던가. 일단 다들 그리도 맛있다 하는 ‘지파이’에 도전 했다.
맛있었다…
여행은.. 둘 이상 다녔어야 한다는 것을 첫날 저녁 지파이를 먹고 바로 깨닳을 수 있었다. 배가 불렀다… 먹을 것 천국인데, 더 먹을 수가 없었다. 이미 내 위장은 고등학교 시절 그 튼튼하던 위장은 아니었고, 이미 몸은 지쳤어도 아직은 숙소로 돌아갈 수 없었다. 왜? 시간이 아까우니까.
그렇게 홀로 야시장을 배회하다 만난 절.
한국인 입장에서는 나름 신기한 풍경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한국의 절은 대부분 산속에 있으니까. 한참을 헤집고 다닌 북적거리는 시장 한 가운데에 절이라니..
(왜 시장 한가운데에 절이 있는지는 삼일째가 되어서야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또 얼마나 걸었을까… 이미 게으름에 찌든 내 몸은 더 움직일 수 없다는 신호를 보냈고 숙소로 돌아와 생에 첫 여행의 첫날을 마무리 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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